NFL 드래프트에는 컴바인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의역하자면 NFL 체력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해 드래프트 될 선수들을초대해 몇몇 기본적인 체력 테스트를 하기 때문이다. 40야드 달리기, 콘을 3개 놓고하는 3콘 드릴, 멀리뛰기, 높이뛰기 등 각종 운동능력에 관련된 테스트를 하는데, 팀들은 컴바인을 자기가 뽑고 싶었던 선수의 자질을 확인하는 무대로 쓰고 있다. NFL 선수들 자체가 탈인간급 운동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보니, 이 자리에서 기록되는 엄청난 움직임들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제는 단순히 팀들이 올해의 신인들을 확인하는 자리를 넘어 NFL에서 비시즌에 가장 큰 행사 중 하나가 되었다. 오늘은 이 컴바인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의 이야기, 마이크 마뮬라라는 선수에 대한 옛날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NFL의 컴바인은 1982년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는 구단들이 미국 각지의 대학에서 뛰는 선수들 중 자신들이 마음에 드는 선수들을 초빙해서 그 선수들의 역량을 쟀었는데, 이 과정이 너무 고되어서 달라스 카우보이스를 만들었다라고도 할 수 있는 전설적인 GM 텍스 스크램이 NFL측에 요청해 전 팀들이 모두 참석할 수 있는 하나의 행사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 뒤로 여러 단체들에서 초빙할 선수들과 팀들을 나눠서 진행을 하다가 1986~87년 정도부터 하나의 행사로 한곳에서 모든 팀들과 초대장을 받은 전미의 유망주들이 모여서 운동능력을 재게 된다. 크게 아래의 시험들이 대표적인데 포지션에서 따라 아래의 시험 중 중요도가 달라진다고 보면된다.
- 40야드 달리기
- 102kg 벤치프레스 (몇회까지 하는지)
- 제자리 높이 뛰기
- 제자리 멀리 뛰기
- 20야드 방향전환 달리기
- 3콘 드릴 등
- Wonderlic Test (IQ검사처럼 지성검사 시험)
- 15분 인터뷰, 신체검사, 메디컬 테스트 등

전반적인 운동능력을 나타내는 40야드 달리기는 전 포지션에 걸쳐 중요하게 생각되고, 라인맨으로 갈수록 벤치프레싱, 2선이나 리시버로 갈 수록 제자리 멀리뛰기 높이뛰기 와 같은 시험들의 중요도가 올라간다고 보는데, 컴바인을 처음 시작했던 80년대 중반 90년대 초중반만해도 컴바인이란 검증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즉, 선수들의 경기 자료를 통해서 내가 마음에 드는 선수를 정해놓은 다음에 실제 플레이에서 나오는 그의 운동능력이 실제인지 아니면 상대가 약해서 잘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용도였다. 예를 들면, 오라인이 필드위에서 자신의 앞에 있는 선수를 항상 압도했었는데 실제로 벤치프레스도 그만큼 출중하게 하는지 확인한다거나, 스피드가 빠른 리시버가 정말 빠른지 40야드 기록을 체크하거나 혹은 스피드가 약점인 리시버가 NFL에서 통용될만한 최소한의 스피드를 갖추는 지 확인하는 등의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컴바인은 선수를 평가하고 드래프트하는데 이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된다. 생각보다 경기장에서의 퍼포먼스가 안 좋았던 선수가 컴바인에서 40야드 스피드가 최고수준인걸 확인하고는 팀들이 어? 내가 가다듬으면 대박터지는거 아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95년 드래프트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이용하는 선수가 나오게 된다.


마이크 마뮬라는 디펜시브 엔드 포지션에서 뛰었는데, 요새 말하는 엣지러셔의 포지션이었다. 보스턴 칼리지 출신으로 대학시절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선수이지만,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선수였다. 전반적으로 많이들 그를 3라운드정도에 뽑힐 선수로 보았는데, 마이크 마뮬라는 컴바인이 선수 평가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직은 컴바인이 시작된지 7~8년 밖에 안되었고 전국단위로 중계 (2004년에 첫 TV 중계)를 받던 시기도 아니라서 선수들도 컴바인의 종목들이 주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 필드 위의 “풋볼 퍼포먼스”를 높이기 위해 훈련을 하지 단순한 달리기, 높이 뛰기와 같은 컴바인 종목들에 대해 훈련을 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마이크 마뮬라는 이 컴바인 종목들만을 위해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 전문 코치진을 구성해서 각각의 종목에 대한 훈련을 받았고, 그로 인해 컴바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

40야드 4.58초의 스피드와 높이 뛰기 98cm는 마이크 마뮬라가 196cm 114kg의 거대한 체구라는 걸 생각했을 때 말도 안되는 운동력으로 비춰졌는데, 대부분의 코너백 (리시버를 막는 포지션으로 평균 체중 80~90kg대)와 비슷한 스피드였는데 그해 처음으로 뽑혔던 코너백 타이런 풀의 40야드 속도가 4.53초로 한 30kg차이나는데 스피드가 고작 0.03초 차이날 뿐이었고, 뿐만 아니라 그의 벤치 프레스 26회는 95년 드래프트에서 처음으로 뽑힌 오라인맨이자 훗날 명예의전당에 들어가게 되는 1라운드 2번픽 토니 보셀리와 같은 숫자였고, IQ검사와 같은 지성검사 시험인 Wonderlic은 50점 만점에 49점으로 역대 2위의 성적을 거뒀다. 즉, 컴바인만을 놓고보면, 마이크 마뮬라는 미래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고 1라운드 2번픽에 뽑혔던 오라인선수와 동일한 파워에, 그 해 스피드가 주특기인 포지션에서의 1위 유망주와 비견되는 스피드까지 가진 압도적인 운동능력의 보유자였다.

최근에 NFL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을 위해 마이크 마뮬라의 컴바인 기록을 2019년도 1라운드 2번 픽이자 현세대 엣지러셔 4천왕 중 하나인 닉보사와 비교해보자. 운동능력 괴물 중 가장 먼저 언급되는 선수 중 하나가 닉보사인데, 마이크 마뮬라는 닉보사보다 40야드 달리기는 2초가 더 빠르고, 20야드 방향전환도 1초 더 빠르고, 닉 보사보다 더 높이 멀리 뛸 수 있는데다가, 그해 컴바인 지성점수까지 더 높다.

당연히 구단들 입장에서는 이 엄청난 운동능력을 가진 원석에 눈이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그 중에서도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그를 1라운드 7번 픽으로 뽑아가게 된다. 그러나 필드 위에서는 딱히 보여준게 없었던 마이크 마뮬라는 컴바인에서 올라갈대로 올라가버린 기대를 맞출 수 없었고, 팀의 전설이자 역대급수비수로 언제나 언급되는 레지 화이트 (별명 : 국방부 장관)의 빈자리를 메꿀거라고 잔뜩 기대한 필라델피아 팬들에게 실망만 안겨주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커리어를 5년 정도 보낸 마이크 마뮬라는 커리어 5년차에 부상을 이유로 은퇴를 해버렸다.
마이크 마뮬라는 그 후로 컴바인에서 반짝 가치가 올라가버린 선수들, 흔히들 워크아웃 워리어 (Workout Warrior)의 대명사와 같은 선수가 된다. 무엇보다 마이크 마뮬라 뒤로 역대급 선수들이 줄줄이 나와서 그렇기도 한데, 같은 해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는 내곽 수비수라인맨으로, 애런 도널드가 있기 전의 애런 도널드라는 평도 듣는 언더사이즈 쌕머신이었던 워렌 쌥 (95년 1라운드 12번픽),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고 페이트리어츠 왕조의 주역이기도 한 코너백 타이 로 (95년 1라운드 23번픽), 워렌 쎕과 함께 버커니어스로 가서 NFL역사상 가장 강한 수비중 하나였던 02년도 버커니어스를 지휘했던 역시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라인배커 데릭 브룩스 (95년도 1라운드 12번픽)까지 있었다. 마이크 마뮬라는 이후로 컴바인에 갑자기 가치가 올라간 선수들에 대한 경종으로 NFL드래프트에서 꾸준히 언급되게 된다.